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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에도 장준하와 박정희에 대한 논란이 거세게 일었던 적이 있었다. 당시 주요 쟁점이 되었던 것은 장준하 의문사 이후 박정희 정권하에서 갖은 고초를 겪다가 말레이시아로, 또 박정희 사망 이후 군사정권의 고문과 협박을 피해 싱가포르로 탈출하여 긴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장준하의 장남 장호권 씨의 영구 귀국 문제와 장준하 본인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 규명이었다. 안타깝게도 의문사 진상규명위원회는 장준하의 죽음에 대하여 진상규명 불능이라는 결론을 내렸지만 당시 참여정부 출범 이후 국민들은 장준하의 의문사에 대한 진상이 밝혀 지리라는 기대를 갖고 있었다.

 

장준하는 모두가 잘 아는 것과 같이 일제 치하에서 학도병으로 징집되었다가 6천여리를 걸어 대한민국 임시정부를 찾아가 광복군에 합류하였고 광복 이후에는 사상계를 펴내고 박정희의 유신정권에 항거하던 인물이다. 참으로 먼 길을 돌아 고국에 돌아왔던 그였지만 고국에서도 그의 삶은 순탄하지 않았고 결국 75년 포천 이동의 약사봉에서 의문의 죽음을 맞이하였다.

 

장준하 본인 만큼이나 그의 장남인 장호권 씨 또한 역경의 삶을 살아왔다. 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는 박정희 정권의 서슬 퍼런 감시와 탄압을 피해 말레이시아로 탈출하였다가 박정희가 죽은 이후 잠시 고국에 돌아왔으나 이후 이어진 군사정권 하에서도 여전히 이방인에 불과하였다. 결국 다시 싱가포르로 탈출하여 고단한 타향살이을 하여야 했다.

 

2004년 장준하의 의문사 진상규명에 대한 세간의 관심이 높아지던 때 국내 모 방송국에서 장준하의 삶을 다룬 다큐 프로그램을 방영한 적이 있다. 장준하가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김구를 만나기 위해 김준엽 등과 같이 걸었던 6천여리를 그의 장남 장호권 씨와 그 두 딸이 답사하는 내용이었다. 광복군에 합류하기 위해 6천여리의 사투를 벌였던 아버지의 길을 그의 아들과 두 손녀가, 또 이를 시청하는 국민들이 다시 걸어보며 장준하의 삶을 되새기는 프로그램이었다.

 

2012년 바로 어제 박정희의 딸 박근혜가 새누리당 대선 후보로 선출되었다는 뉴스를 접하면서 2004년 아버지의 6천리 대장정을 다시 걷던 장호권가 또렷하게 다시 떠오르는 건 왜일까. 대통령이었던 아버지, 그녀 스스로 조국의 근대화를 위해 헌신하였다는 아버지의 길을 다시금 걷고자 하는 박근혜와 아직까지 그 죽음의 진상조차 밝히지 못한 아버지 장준하의 길을 걸었던 장호권.

 

역사는 기억해야 할 것과 망각해야 할 것을 솎아내는 일련의 작업일지도 모른다. 분명한 것은 기억과 망각을 위한 첫걸음은 반성이라는 점이다. 우리가 독도 문제나 위안부 문제에 대하여 일본의 행태를 비판하는 것은 독도에 대한 근거없는 야욕, 위안부 문제에 대한 몰염치한 반박 뿐만 아니라 분명 기억하고 되새겨 다시는 그러한 만행을 저지르지 않기 위한 반성의 부재일 것이다. 과거의 잘못에 대한 반성이 없는데 어떻게 과오에 대한 경계심을 가질 수 있으며 과거의 잘못으로 인한 영화에 대한 야욕을 망각할 수 있을 것인가.

 

연일 야권에서는 박근혜의 역사인식에 명확한 표명을 요구하고 있다. 아버지 박정희에 대한 딸 박근혜의 소회를 묻는 것이 아니라 독재자 박정희에 대한 유력 대권 후보 박근혜의 평가를 듣고자 하는 것이다. 박정희의 516 쿠테타에 대하여 다음 세대의 역사적 평가에 맡기자는 식의 행보는 책임있는 대권 후보로서 당연히 거쳐야 할 국민의 평가를 거부하는 꼴이 될 것이다.

 

인생은 참으로 기구하다. 조국의 해방과 민주화를 위해 먼 길을 달려왔던 아버지 장준하와 아버지 원행을 따라하기라도 하듯 원치 않던 타향살이를 해야 했던 아들 장호권. 다카기 마사오라는 이름의 일본군 장교로, 또 대한민국의 대통령으로 20년에 가까운 독재의 길을 걸었던 아버지 박정희와 '조국근대화'를 위해 아버지가 걸었던 대통령의 삶을 살고자 하는 딸 박근혜. 역사는 참으로 아이러니가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