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osted
Filed under 정치외교/정치

 

추석입니다. 멀리 떨어져 지내던 일가친척이 모두 모이는 즐거운 자리입니다. 서로 나누고 싶은 정도 말도 많은 명절인데요, 당연히 이번 18대 대선에 대한 이야기들도 서로 오갈 것입니다. 피붙이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들이니 어느 자리보다도 솔직담백하게 자신들의 표심을 드러낼텐데요, 과연 추석은 이번 대선에 어떠한 영향을 미치게 될까요?

 

이번 18대 대통령 선거는 12월 19일 수요일에 실시됩니다. 현행법상 대통령 선거일은 '대통령 임기 만료일 (2월 24일) 전 70일 이후 첫번째 수요일'로 정해져 있습니다. 꽤 복잡한 데요, 뭐 대략 12월 중순으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최근 이슈화된 투표시간과도 무관하지 않은 문제인데요, 왜 하필 이렇게 한 해 중 해가 가장  짧다는 동지에 실시하는 것일까요? 또 언제부터 집 밖 나들이를 하기에 최악의 날씨인 엄동설한에 선거를 치르게 된 걸까요?  

  

(출처 : 청와대. 역대 대통령)

 

초대 대통령 선거일은 7월 20일이었습니다. 한창 더운 여름이었습니다. 뭐 다들 아시다시피 제 1대 대통령선거에서는 선거일 바로 사흘 전, 헌법 초안을 서명, 공포한 국회의장 이승만이 대통령에 당선이 되었습니다. 제 1대 대통령 선거부터 제 12대 대선(81년 2월 25일)까지 대통령 선거일은 모두 제각각이었습니다. 또 서슬퍼런 독재의 칼날이 국민들의 표심에 지대한 영향을 주던 때이니 추석 민심을 따지기에는 부적절합니다. 게다가 직접선거가 싫다 싶으면 독재정권의 입맛에 맞게 적당한(?) 사람들끼리 모여 득표율 100%의 간접선거를 하던 그런 때이니 굳이 추석민심이랄 것도 필요없던 때니까요. 

 

(출처 : 국가기록원. 1978년 제9대 대통령 취임식에서 선서하는 박정희. 총 득표수 2,577표로 만장일치로 선출)

 

추석 이후 겨울에 대선을 치르게 된 것은 제 13대 대통령 선거 때 부터입니다. 이 때 이후로 대선을 12월 17일을 전후해서 실시가 되었죠. 13대 선거 때는 12월 16일에 대선이 실시되었습니다. 추석은 10월 7일이었습니다. 전두환의 뒤를 이어 대권을 노리던 노태우는 김대중 전 대통령을 사면 복권시켜 김영삼과의 대결구도를 자연스럽게 유도하고 있는 상황이었죠. 87년 6.29 선언을 끌어내는데 큰 공헌을 하였던 통일민주당은 양김에 의해 순조롭게 대권가도를 달려가는 듯 했습니다. 그렇지만 둘 중 누군가는 양보를 해야했습니다. 김영삼, 김대중 양김은 추석을 전후하여 대권을 향한 복심을 표면화하게 됩니다. 대권 후보 선출을 놓고 줄다리기를 하던 양김 세력은 10월 29일 김대중계가 분당을 선언하며 집단 탈당하면서 노태우가 바라던 3자구도를 형성하게 됩니다. 결국 36.6%를 득표한 노태우 후보가 제 13대 대통령에 당선되게 됩니다. 양김의 득표율합은 55%였죠.

 

87년 추석 때 오가던 대화들은 어떤 것들이었을까요? 아마도 양김의 단일화 여부와 또 단일화가 될 경우 누가 최종 대선 후보가 되어야 하는지가 중요 키워드였을 것입니다. 그런만큼 양김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와 관심도 최고조에 달해 있던 때일 것입니다. 올해의 추석과 무척이나 닮은 꼴이죠? 추석을 앞두고 온갖 의혹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쏟아져 나오는 것도 아마 이러한 이유일 것입니다. 기대와 관심이 한 곳으로 몰리는 것을 막기 위한 계산의 결과인 것이죠. 

 

(출처 : 국가기록원. 대통령 취임식에서 환호하는 노태우)

 

92년 14대 대통령 선거는 12월 18일에 실시되었습니다. 추석은 9월 11일이었죠. 올해보다는 훨씬 이른 추석이었습니다. 김영삼은 이미 1990년 삼당합당을 통해 92년 14대 대통령 선거를 위한 기반을 다져놓은 상태였습니다. 대통령이 되기 위해서 야합마저 불사할 만큼 대권에 대한 그의 야욕은 명확해 보였습니다.  그 해 3월에 실시된 총선에서 31명의 국회의원 당선자를 배출하며 화려하게 등장한 통일국민당은, 확실한 자금력을 기반으로 대권에 도전한 정주영 회장의 든든한 정치적 디딤돌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당시 민주당을 이끌던 김대중 전 대통령은 92년 총선에서 97석을 차지하며 거대 야당이었던 민자당의 과반 확보를 저지하는 데 성공한 상태였죠. 추석을 코 앞에 둔 8월 말,  노태우는 제2이동 통신사업자로 사돈지간이었던 대한텔레콤(現 SK텔레콤)을 선정하였다가 국민 여론의 뭇매를 맞고 7일 만에 취소하는 해프닝을 벌이게 됩니다. 또한 그 해 총선에서의 군부재자투표부정을 폭로한 이지문 중위가 이등병으로 강등되어 눈물을 흘리며 불명예제대하는 모습을 채 잊기도 전인 9월 초에 6공 최대 사기사건 중 하나인 정보사부지 매각사기사건이 터지면서 여권에 대한 국민들의 지지도는 곤두박칠치게 되죠. 김영삼의 입장에서는 편치 않은 추석을 맞이하였을 것입니다. 아직 대선 구도가 표면화되지 않던 시점이었지만 총선에서의 패배와 잇따른 정권말기 부정부패 의혹들은 여권 유력 대선 후보였던 김영삼 후보에 대한 세간의 민심을 요동치게 하였을 것입니다. 아마 92년의 추석 키워드는 삼당야합 이후 김영삼의 몰락과 김대중의 건재, 정주영의 부상 등이었을 것입니다. 이 추석 민심이 이어지고 연말의 이른바 '초원복집 사건'의 역풍이 없었다면 대선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입니다.

 

(출처 : 국가기록원. 취임식 기념 행사장에서의 김영삼 전 대통령)

 

97년 15대 대선일도 12월 18일이었죠. 그 해 추석은 9월 16일이었습니다. 잘 아시다시피 97년에는 한보그룹, 기아그룹 등 굵직한 기업들이 줄도산하면서 그 어느 해보다도 매서운 추석 경기 한파를 겪던 때입니다. 그야말로 격랑의 시간이었습니다. 대선 구도도 격랑이었죠. 당시 이인제 경기도지사의 신한국당 탈당이 최고의 관심사였습니다. 경선결과에 불복하면서 추석을 사흘 앞두고 이루어진 갑작스런 탈당이었기에 대다수의 국민들은 탈당 소식을 귀성길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인제 경기지사의 입장에서는 대권에 대한 야심을 포기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고 지긋지긋한 3김정치에 대한 대안을 찾던 국민들 입장에서는 또 한 명의 대권 변수가 등장하게 된 것이죠. 이회창은 두 아들의 병역비리 의혹으로 하락세가 완연하던 터라 이인제 탈당이라는 내부 분열을 막아낼 재간이 없었습니다. 아무튼 추석 민심은 이인제의 편이었던 모양입니다. 박정희 신드롬을 등에 업고 이인제의 지지도는 추석 이후 상승세를 이어가며 적어도 김대중, 이회창과의 3강 구도 굳히기에는 성공하게 됩니다. 결국 이회창의 입장에서는 김대중 후보에게 단 39만표 차이로 패배하는 뼈아픈 결과로 이어지게 되죠.   

 

(출처 : 국가기록원. 취임식장에서의 김대중 전 대통령)

 

2002년 16대 대선을 앞두고 실시된 6월 지방선거에서 당시 여당이었던 새천년민주당은 참패를 겪게 됩니다. 국민참여경선제로 새천년민주당의 대권 후보로 추대된 노무현 전 대통령의 하락세도 뚜렷했습니다. 후보 개인의 지지도 하락이라기 보다 정당차원에서의 지지도 하락이었던 셈입니다. 당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이회창은 물론 정몽준과도 지지도가 10%p 이상 벌어져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추석 직전에는 드디어 정몽준이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하게 됩니다. 추석 민심을 바탕으로 '대권 주자' 정몽준을 확실히 각인시킴은 물론 노무현 당시 새천년민주당 후보와의 단일화 논의에서도 우위를 점하고자 하는 포석이었을 것입니다. 언론이 발표하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지도는 여전히 20%p를 하회하고 있었죠. 추석 이후 이회창, 정몽준의 양강구도는 굳어지는 듯 보였습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오히려 정몽준 체제로의 단일화 압박에 시달리게 됩니다. 그러나 여론조사 결과는 언론이 발표하는 지지도와는 사뭇 달랐습니다. 결국 정몽준은 단일화 후보로 노무현 전 대통령의 손을 들어주게 됩니다. 이회창은 다시 한번 57만표 차이로 패배하고 말죠.

(출처 : 국가기록원. 취임식장으로 가기 직전 아이들로부터 축하를 받는 故 노무현 전 대통령)

 

2007년 17대 대선을 앞 둔 추석 민심은 별다른 이슈 거리가 없는 싱거운 상황이었습니다. 여권의 유력 대선 후보로 거론되던 고건은 일찌감치 대선에 뜻이 없음을 분명히 한 상황이었고 추석을 한 달여 앞두고 한나라당의 대선 후보로 선출된 이명박 서울 시장은, 추석 이전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방침 발표로 급속도로 보수화된 민심을 등에 업고 청계천 복원 공사 이후 이어진 상승세를 계속 이어나가게 됩니다. 박근혜로서는 차떼기당의 위기를 가까스로 막아내고서 결국 내부의 적에 의해 무너지게 된 셈이었죠. 뚜렷한 여권 후보가 부재한 상황에서 추석을 사흘 앞두고 이루어진 북한의 핵실험 강행 발표 등은 이명박에게 명백한 호재였습니다. 북한이라는 실체적 위협의 존재는 일단 보수층의 추석 민심을 결집시키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음은 물론 '여성 대통령' 불가론의 감정적 기반을 형성하게 됩니다. 결국 이명박은 역대 최다표차로 17대 대통령에 당선되죠.

 

 

(출처 : 국가기록원. 대통령 선서 중인 이명박. 그 뒤로 보이는 박근혜)

2012년 18대 대선을 앞 둔 올해 추석에는 어떤 이야기들이 오갈까요? 역대 대선을 앞 둔 시점의 추석을 돌이켜 볼 때 최고의 주제는 역시 단일화일 것입니다. 숱하게 불거져 나온 각종 의혹들에 대한 이야기들도 오갈 것이 분명합니다. 모쪼록 이번 추석이 바쁜 일상에 쫓겨 관성화된 시각으로 각 후보들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푸근한 고향의 품에서 마음편하게 차근차근 후보들의 면면을 살피고 고민하는 시간이 되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