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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수도인 도쿄로부터 북쪽으로 약 100 Km를 가면 우쓰노미야라는 도치기 현의 현청 소재지가 나옵니다. 일본의 명치유신 시기 도쿠가와 막부군과 메이지 천황의 정부군 간 무진전쟁의 격전지 중 하나인 우쓰노미야 성이 있는 곳입니다. 1926년 7월 23일 이 곳 우쓰노미야의 형무소 독방 쇠창살에 스물 셋 한 여성이 스스로 노끈으로 목을 매어 자살을 합니다. 그녀의 이름은 가네코 후미코. 그녀는 동지이자 남편이었던 아나키스트 박열과 함께 도쿄에서 불령사라는 단체를 결성하고 기관지 '후토이센징'을 발행하여, 일본의 천황제를 비판하고 천황 암살을 계획하다가 관동대지진이 일어난 지 이틀 뒤인 1923년 9월 3일 체포되었습니다.

'천황의 실체는 한낱 고깃덩어리이고 소위 인민과 완전히 똑같으며 마땅히 평등해야 할 존재입니다. ... 나는 권력 앞에서 무릎을 꿇고 살아가느니 차라리 죽어서 끝까지 나로 시종일관하겠습니다.' (186쪽,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돌베게, 2007)

재판장에서의 그녀의 일갈은 일본 근대 지식인의 양심적 자기 부정을 극명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녀가 태어난 곳은 일본의 요코하마였지만 그녀는 아홉 살부터 열여섯 살까지 조선에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지금은 세종특별자치시에 편입된 지역이죠, 당시 충청북도 부강(현 세종시 부강면)에는 그녀의 친할머니와 그녀를 양녀로 맞아들인 고모가 살고 있었습니다. 조선에 오기 전 그녀는 고아나 다름 없는 신세였습니다. 경찰이었던 아버지는 처제와 육체관계를 맺고 아내와 딸 후미코를 버렸습니다. 재혼을 위해 어머니마저 후미코를 버리게 됩니다. 오갈 데가 없어진 후미코를 거두어 준 곳이 바로 친할머니가 살고 있는 조선이었습니다. 이것이 그녀가 그토록 사랑한 식민지 조선과의 첫 만남이었습니다. 후미코는 조선에서도 불운한 성장기를 보냈습니다. 부강의 지주이자 조선인을 상대로 고리대금업과 아편 밀매업을 하던 그녀의 친가에서 후미코는 학대와 멸시를 받으며 여러차례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결국 일본으로 돌아 온 그녀는 도쿄에서 노점상에 신문팔이를 하면서 아나키스트로 성장하게 되죠. 그녀가 박열을 만난 것도 바로 이 때 입니다.

 

하늘 보고 짖는

달을 보고 짖는

 

보잘 것 없는 나는

개놈이로소이다!

 

높은 양반의 가랑이에서

뜨거운 것이 쏟아져

내가 목욕을 할 때

 

나도 그의 다리에다

뜨거운 물줄기를 뿜어내는

 

나는 개놈이로소이다!

 

(박열의 시 '개놈')

 

이 시를 읽으면서 그녀는 조선인 채무자를 천장에 매달아 고리채를 뜯어내던 이모 부부, 어머니와 그녀, 그리고 이모마저 버린 비정한 아버지, 신문을 팔고 노점상을 하던 후미코를 차별하고 멸시의 눈초리로 바라보던 그 숱한 사람들에게 속 시원하게 사자후를 내지르는 것 같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후미코는 사랑하는 박열과 만나게 됩니다.

식민지 조선을 사랑한 아나키스트. 사형을 무기형으로 감형한다는 천황의 은사가 담긴 감형장을 스스로 찢어버리고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지성과 양심에 눈감아버린 일본 제국주의에 둔중한 경종을 울리고 싶었을 것입니다.   

 

 

 

책장에 꽂아 놓은 모습 그대로 책은 그 자리에 그대로 있었습니다. 바뀐 것은 몇 해 동안 먼지와 寡讀의 더께에 누렇게 변해 버린 겉모습 뿐입니다. 일본인이면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하여 전사한 국제여단 병사 잭 시라이, 도덕이 무너져버린 나치 독일 시대에 도덕주의자가 되고 싶었던 독일 시인 에리히 케스트너 등 20세기의 좌절과 고뇌를 온 몸으로 항거하며 살아 간 '사라지지 않을' 49인의 '先生'들의 발자취를 더듬어 배우기 위한 책. '사라지지 않는 사람들' (서경식 지음, 이목 옮김, 돌베게, 2007).

이 블로그의 다른 글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줄다리기입니다. 좀 더 정확히 말하자면 퀘퀘한 구석으로부터 끊임없이 스멀스멀 잠식해 들어오는 편향된 사고와 인식으로 인한 끊임없는 망각의 도전에 맞서 상흔처럼 아로새겨진 기억의 고된 투쟁의 자취라고 할 수 있습니다. 거창하게 표현했지만 다시 풀이하자면 솔직하고 진심어린 인류 문명의 반성문 같은 것이죠. 잘한 일은 잘한 일 대로, 잘 못한 일은 잘 못한 일 대로, 또 칭찬 받을 일은 칭찬 받을 일 대로, 혼나고 다시는 하지 않아야 할 일은 또 그것 그대로, 곱씹고 되새김질하여야 할 지성의 양식인 셈입니다. 그렇지만 그 역사라는 거대담론을 현실로 맞닦뜨렸을 때 인간은 누구나 나약해 질 수 밖에 없습니다. 총칼로 무장한 위선과 부조리, 편견에 짓눌려 인간으로서 망각해서는 안 될 많은 것들을 애써 외면하며 기억에서 스스로 지워왔습니다. 

아마 그 이유는 욕심이었을 것입니다. 잠깐만 인간으로서의, 지성인으로서의 양심을 외면하고 눈감아버리면 적어도 '나'는 그 망각하고자 하는 집단에 의한 희생양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미련한 욕심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후미코처럼, 또 이 책 속에 소개된 49인의 지극히 '정상적인' 양심들처럼 살아가는 것은 결코 쉽지 않은 일임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이것만이 인간이 시간을 거스르는 유일한 길입니다. 이 책의 맨 첫머리에서 저자는 이 책을 저술한 동기가 바로 '노스텔지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 사람들의 희망, 싸움, 고뇌, 환희 그 모든 것을 과거의 것으로 만들어 버리는 '시간'. 자신들의 정당한 행위를 감추고 부당한 권익을 기정사실화하려는 권력자와 기득권자의 가장 강력한 무기. 그 것에 맞서는 가장 강력한 무기는 바로 '노스텔지어'라는 팔레스타인 난민 영화감독 미셀 클레이퍼의 말을 인용하고 있습니다. 바로 이 책 속의 49인의 삶을 일컫는 것일 겁니다.

독재와 쿠데타, 사법살인을 '역사'가 평가해 줄 것이라는 여권 대선 후보, 피해자나 가해자 모두가 뻔히 다 아는 위안부 강제 동원을 부정하는 일본. 이 책이 주는 교훈은 책에 쌓인 더께만큼 더 무거워진 듯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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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Invictus_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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